영화 미나리 보고 왔습니다.
영화의 줄거리는 이렇습니다. 심장이 안 좋은 아들과 딸 하나씩을 둔 한국인 부부가 캘리포니아에서 아칸소로 이사를 옵니다. 남자의 로망이었던 넓은 땅에 농사를 지으며 살기 위함인데, 이사온 곳이 집이 아니라 긴 트레일러입니다. 남편과 아내 모두 병아리 부화장에서 병아리 똥꼬만 쳐다보며 감별 일을 하는 장면이 나오는 것으로 보아 수입이 많은 것 같진 않고, 빚이 있다는 대사가 나옵니다. 아내는 남편만 바라보며 버티는 삶에 조금씩 지쳐갑니다. 남편은 상황을 타개하기 위해 농사를 시작하려는 생각이지만 아내는 심장이 아픈 아들을 데리고 너무 외진 곳으로 온 게 아닐까 걱정이 많습니다. 걱정은 부부싸움으로 번져, 타개책으로 친정 어머니(윤여정)가 미국으로 건너와 같이 생활합니다. 그러면서 많은 일들이 벌어지는데...
상영관으로 들어서며 걱정이 앞섰습니다. 불안한 생활 > 큰 비극 > 눈물과 화해 > 가족애 부각... 이라는 K-신파 테크의 영화가 아닐까 싶었습니다. 스티븐 연이 이 작품으로 연기상 후보에 올랐다고 하는데 강한 감정씬이 많이 나오겠구나 하는 예상을 했더랬지요.
하지만 영화는 인물에 대한 예의를 갖추고 있는 영화라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아들의 심장이 아프고, 부부가 꽥꽥 소리를 지르며 싸움을 하고, 한국에서 건너온 할머니가 잠시나마 몸이 마비되고, 불이 나서 창고가 불에 타는 등 사건이 벌어지지만 인물을 극한까지 몰아붙여서 감정을 강제하는 작품은 아닙니다. 돌아보면 살면서 '저런 거 한번쯤은 겪지' 싶은 행복과 불행을 담담하게 보여줍니다. 특별하게 행복한 삶이나 불행한 삶을 제외한 우리네 삶이랑 닮아있는 그런 삶입니다.
같은 맥락으로 영화 내의 사건에 대해 정확한 설명을 하지 않습니다. 아들내미의 심장은 왜 안 좋은지, 할머니는 왜 몸이 마비되었는지, 왜 드럼통에 쓰레기를 태웠는지... 이런 장면을 좀더 세심하게 그려내 개연성을 확보할 수도 있었겠지만 이 영화가 지향한 바는 그게 아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그 판단이 옳았다고 생각합니다. 행복인지 불행인지, 왜 벌어졌는지 모르겠는 일들 투성이여도 삶은 결국 흘러가듯이요.
극중 윤여정이 미국으로 건너오며 미나리 씨앗을 가져오는데, 손주와 미나리 심을 곳을 알아보며 이런 말을 합니다. [언제 어디서든 잘 자라는 미나리, Wonderful 미나리]. 담담한 서사에 비해 조금 노린 대사와 제목 아닐까 싶었지만 그래도 좋았어요. 미나리는 한국에서도 미국에서도 잘 자랄 것이고 인생 역시 언제 어떻게 방향을 틀지는 몰라도 행복과 불행을 넘나들며 계속되겠죠.
슴슴한 엔딩에 응? 이렇게 끝난다고? 당황했지만 이 또한 극장을 나오면서 마음에 들더군요. 양념을 덜 쳐 싱겁지만 본연의 향을 잃지 않은 나물 무침을 먹는 느낌의 영화였습니다.